그냥 사담

오랫만에 이글루스에 들어오니 예전에 '평온'에 대해 썼던 것이 기억나서, 그냥 또 쓰는 글. 

어릴 때 외갓집에서 할머니랑 이모들이랑 엄마가 모여서 가만가만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들으면서, 막 꺼내 깔아 조금 차가운데 또 청결한 요나, 덮은 얇은 이불의 감촉을 느끼면서 가물가물 잠들었을 때. 그때 뭔가 큰 불안이나 걱정거리를 해소한 직후가 아니더라도 그냥 '안심'했던 첫 때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장마인가 태풍인가로 베란다 창 밖으로 엄청 비가 오는데 집에서 엄마랑 동생이랑 수제비를 먹던 기억. 춥고 어두운 바깥이랑, 따듯하고 포슬포슬한 수제비가 묘한 대비를 이루었던게 뭔가 인상에 남았나보다.

그리고 거의 열살 넘는 선배들이랑 어딘가로 합숙을 갔었는데 합숙 다음날 아침에 같이 티비 보면서 밥해먹었던게 뭔가 묘하게 친척들이 모인 명절같아서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았던 기억. 

그리고..... 지금. 
어른이 되면, 그래서 전적으로 내 돌봄이 필요한 존재가 생기게 되면... 이제까지 겪었던거랑은 다른 편안함을 느낄 수 있구나.하고 있다. 
보통 아파트 복도에서 무슨 작은 소리만 들려도 귀부터 쫑긋거리고 반응하던 우리 집 고양이가, 내 옆에서 아주아주 편안하게,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든 곤히 자고 있는 걸 보고 있는데... 경계심 많은 동물이 이렇게 푹 자는거가 신기하기도하고, 
무엇보다 누가 나로 인해 안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꽤 근사한 경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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