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비용 그리고 도시와 건축, 함인선

공학은 돈과 안전 사이에서 평형을 잡는 학문이다. 순수 공학적으로만 본다면 사고로 죽을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비행기를 만들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비행기가 투입된다면 항공료는 몇 곱으로 뛸 것이다. (27년 동안 사고 딱 한번, 이 사고로 운항 중단한 콩코드기는 뉴욕-런던 편도요금이 1,600만 원이다.) 그러므로 바꿔 말하면 우리가 싼값으로 미주, 유럽을 갈 수 있는 것은 '적당'하게 사고가 나도록 설계한 비행기를 타고 있다는 얘기이다. 여기에서 관건은 이 '적당'이 무엇이냐이다. 공학적으로는 '안전율'이고 사회적으로는 '목숨값'이다. 그리고 이 '목숨값'은 보험사들의 정교한 계산에 의해 책정이 된다. '목숨값'이 오르면 '보험료'도 오르고 비행기 제작사의 설계 기준 '안전율'이 높아진다. 이 프로세스는 인문/사회학적 의제와는 별개로 작동하는 냉혹하기 짝이 없는 '공학-돈'의 메커니즘이다. (20) 

안전율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엔지니어가 아니다. 좁게는 적절한 가격으로 제품을 팔아야 하는 경영자이고 넓게는 그 제품을 그 가격에 사겠다고 합의한 사회의 구성원이다. (...) 세월호의 안전율은 우리 사회가 이미 암묵적으로 인정한 수치 (...) (21) 

배의 안전율은 곧 운항수익의 함수이다. 그리고 운임은 좁게는 그 회사의 경영진이 정했겠지만 넓게는 동종업계의 합의였을 것이고 더 크게는 물가를 통제하는 당국과 시장이 정했을 것이다. 박하게 책정된 안전율임에도 범죄자들은 이마저도 빼먹을 것이라는 것은 경험상 '예견된 일'이다. 그러나 국가나 우리 시민 모두 '예견된 범죄'를 막지 못했다. 사회적 '예고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 이 문제는 철저하게 비용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 비용은 지금까지 지불했어야 함에도 유예해 온 것이기 때문에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고 과연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인지 아닌지도 모른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 과연 우리 나라에 각종 사회적 장치에 대한 안전율을 0.1이라도 올리고, 사회적 예고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어느 정도의 예산이 더 든다는 통계나 연구가 하나라도 있는가? 더 나아가 이것이 국가의 재정으로 해결할 문제인지, 그런 비용을 국민들이 치를 의사가 있는지, 우리의 정치적 리더십이 합의를 이끌 능력이 있는지를 혹시 아는가? 여기저기에서 서로를 탓하는 소리는 많고 돈 안 드는 대오각성하자는 외침은 많으나 도대체 얼마를 더 걷어야 되는지를 묻거나 답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22)

공학적 사고의 원인은 안전율의 부족 때문이고 안전율의 부족은 돈의 부족 때문이다. 터키에서 이번에 광산 사고로 400명 이상이 또 죽었다. 연평균 사망자는 영국의 16배이다. 같은 시대에 그깟 안전 기술이 터키에 없을리 없다. 그 기술을 구입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영국보다 목숨값이 그만큼 싸기 때문이다. 미국의 골드러시 때 사람 목숨값은 노새보다 못했다. 노새가 이민 노동자보다 귀했기 때문이다. (27)

불법 건축을 발본색원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만약 이를 실행에 옮기면 상상할 수 없는 후폭풍이 따른다. 이를 실천하는 데 소요되는 행정비용은 물론 사회 전체의 주거비용의 대폭적인 상승을 각오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전혀 아니다. 대기업들은 임금 상승에 따른 대외 경쟁력 약화를 두려워할 것이고 저소득층 또한 소득 증가 없는 주거비 향상을 바라지 않는다. 국가 역시 급격한 주거 비용의 변동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한 나라 건축의 불법 부실의 정도는 그 사회가 지불할 수 있는 총 비용과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42)

도대체 이 사회에 아산 오피스텔이 얼마나 숨어 있을까? 안전율 1.5 중 0.5는 이미 까먹고 붕괴의 여부는 천운에 맡기고 서 있는 건물이 몇이나 될까? 도대체 노래방, 고시원의 화재는 언제쯤이 되어야 뉴스에서 사라질까? (소방방재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고시원, 노래방 등의 다중이용업소 화재로 42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전체 화재에 비해 화재 1건당 인명피해율이 2.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에서의 안전사고 건수가 연간 6,926건에 이른다는 것은 알고 계신가? (2008년도 통계. 이중 운동장에서의 사고 3,102건을 뺀 3,842건은 모두 건물 안에서의 사고다.) 우리 시대 건물은 살상도구이다. 부실 시공으로 죽이고, 불이 났는데 통로를 막아 죽인다. 아이들이 이리저리 부딪쳐서 다치게 만들고 눈이 왔다고 무너져서 죽인다. 국가 대개조 이전에 건축 대개조만이라도 해서 원치 않는 죽음을 막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43) 

예컨대 미국의 경우 건축물의 안전이 건축사의 생명이다. 구조 부재에 자그마한 금이라도 가거나 할머니가 욕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할라치면 당장 소송이 들어온다. 패소하면 바로 보험요율이 감당 못할 정도로 오른다. 설계비를 올리거나 파산해야 되고 그는 평생 이 직업을 가질 수 없다. 법으로 일일이 규제할 이유가 없다. 아예 건축법을 '빌딩 코드 Building Code'라고 하여 민간협회에서 자율적으로 만든 기준에 위임하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나는 지속적으로 건축법을 없애자고 주장해왔다. 이 '지킬 수 없는 법'은 공무원과 김 사장만을 위한 법이기 때문이다. (45) 

건축은 당대의 정치/경제적 역학관계의 즉시적인 반영이다. 한 시대의 모든 권력과 부를 동원해야 지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시대 기술의 최고 성취가 투입되기에 당대의 과학과 공학에 대한 태도뿐 아니라 그 수준까지 읽을 수 있다. 또한 건축은 예술의 한 분야이기 때문에 당대의 지배적인 미적 경향의 반영인 동시에 문화적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53) 

안도는 가장 일본적이었기에 세계적이 된 경우다. 그리고 아주 역설적이게도 그가 항상 일본 건축 밖에서 건축을 공부했기에 그리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건축 아카데미즘에 빚진 바가 없었기에 오히려 일본을 객관화하여 체화할 수 있었고 어려서부터 건축을 몸으로 익히고 여행과 책을 통해 독학했기에 건축의 본질에 바로 접근할 수 있었다. 복서 출신답게 그는 매사에 전투적이다. "그간 설계한 도시주택에서 벽은 공격적이며 침묵 속에서도 폭력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사회적인 의미를 묻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설계는 나와 건축주, 그리고 스태프들과의 싸움이며, 어떻게 하면 그들을 압도할 논리적인 힘을 가지는가는 내낸 풀어야 할 과제이다."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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